2025. 3. 28. 13:18ㆍ개발자 소개글/회고록
얼마 전, 한 스타트업의 엔지니어 파트에 서류 지원을 하였다.
나름 진지하게 준비해서 제출했고, 결과는 서류 탈락이였다.
탈락 자체는 이해할 수 있었다.
모든 기업이 저마다의 기준이 있고, 인재를 판단하는 방식도 다를 수 있으니까.
그런데 불합격 안내 메일 말미에 “궁금하신 점은 언제든지 문의 주세요.” 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솔직히 형식적인 멘트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침 나도 그 회사에 대해 궁금한 점이 생겼기에,
한 번쯤 직접 물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궁금했던건 단순한 불합격 사유가 아니였다.
당시 내 머릿속에는 이런 의문들이 맴돌고 있었다:
이 회사는 성장 가능성이 있는 인재를 원하는 걸까,
아니면 즉시 투입 가능한 실전형 인력을 더 중시하는 걸까?
채용 기준은 체계적으로 마련돼 있을까,
아니면 내부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뀌는 주먹구구식 구조일까?
말하는 것처럼 정말 '스타트업다운' 유연한 문화가 존재할까,
아니면 겉으로만 자유로운 분위기를 흉내내고 있는걸 아닐까?
장기적인 플랜과 단기적인 실행 계획은 명확히 세워져 있을까?
아니면 ‘빠르게 해보자’는 말 뒤에 구체성이 부족한 건 아닐까?
사람을 하나의 팀원으로 존중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단순히 소모품처럼 쓰다 갈아끼우는 구조는 아닐까?
코드나 협업 방식에도 일관된 기준과 스타일이 있을까,
아니면 개발자의 취향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지는 상황은 아닐까?
그리고, 정말로 ‘조직 문화’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겉으로만 ‘문화’라는 단어를 붙여놓고, 실제로는 각자도생의 구조는 아닐까?
체계는 이미 잘 정리돼 있을까?
아니면 아직 부족하더라도, 그 부족함을 인정하고 개선하려는 의지가 있을까?
나는 그저 결과를 뒤집어달라고 요청하려던 게 아니었다.
이미 탈락한 건 받아들였다.
다만, 그 조직이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어떤 개발 문화를 지향하고 있는지가 궁금했을 뿐이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질문들을 조심스럽지만, 진심을 담아 전달드렸다.
1. 채용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은 무엇인가요?
- 기술 역량뿐만 아니라, 팀과의 핏(Fit), 개발 문화 적응력 등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고려하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2. 초기 스타트업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적합하다고 하셨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 빠른 실행력, 불확실한 환경에서의 적응력, 주도적인 문제 해결 능력 중 어떤 요소를 가장 중요하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 혹시 기존 지원자들이 스타트업 경험을 강조할 때, 어떤 방식이 긍정적으로 평가되었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3. 개발 문화는 어떤 방향을 선호하시나요?
- 개발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빠른 실행 vs. 구조적 설계, 자율성 vs. 체계적인 프로세스 등)가 있다면 궁금합니다.
- 특히, 서비스의 성장과 성공을 위해 개발팀이 가져야 할 태도나 마인드셋이 있다면 알고 싶습니다.
4. 함께하고 싶은 개발자는 어떤 유형인가요?
- 기술적인 역량뿐만 아니라, 협업 방식이나 문제 해결 능력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점이 있다면 공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또한, 서비스 성공과 관련된 동기부여를 어떻게 평가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그래서 나는 정중하게 문의를 드렸다.
결과 자체보다도, 그 판단이 어떤 기준과 과정에서 내려졌는지가 궁금했다.
그 안에서 내 방향을 점검할 실마리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 돌아온 답변은 이랬다.
- 전형 결과에 대한 피드백은 형평성 문제 로 제공하지 않음
- 내부 상황과 핏의 차이로 인해 아쉽게 불합격 결정
- 지원에 감사하며, 좋은 기회로 다시 만나길 바란다
이렇게 정돈된 문장이 담긴, 매우 정중한 메일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 ‘형평성’이라는 말, 정말 맞는 걸까?
불합격 안내 메일에는 전형 결과에 대한 피드백은 형평성 문제로 제공하지 않는다는 문장이 있었다.
하지만 형평성이란 말이 매우 이상하게 들렸다.
누군가는 피드백을 받고, 누군가는 못 받으면 불공평하니까 — 아예 모두에게 주지 않는다고?
그건 정말 형평성일까, 아니면 그냥 피드백을 회피할 수 있는 제일 편한 이유일까?
겉보기에는 공정해일관된 기준처럼 들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원자 입장에서는 느껴지는건 다르다.
일관성이라는 명목 아래, 대화를 거부하는 방식에 가깝다.
형평성이란, 같은 조건에서의 동등한 기회를 의미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에게도 피드백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한 무대응을 정당화하는 논리처럼 보였다.
단 한 줄의 피드백이 누군가에겐 다음 도전을 위한 방향과 단서가 된다.
“이런 부분이 아쉽다.”, “이 점을 보완해보라.”
그 정도의 성의가 있었다면, 나는 납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받은 답변은 단 하나였다.
“핏이 달랐다.”
❓ 그런데, 면접도 안 봤는데 핏이 다르다고?
솔직히 말해, 개인적으로 가장 어이없었던 건 이 말이었다.
“면접도 보지 않았는데, 나와 핏이 다르다는 건 어떻게 판단한 걸까?”
내 목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고, 어떤 대화도 나눈 적 없는 상태에서 무슨 근거로 "맞지 않는다."고 판단할 걸까?
‘핏’이라는 말은 핑계 대기 참 좋은 단어다.
모호하고, 주관적이고, 누구도 명확히 따질 수 없다.
그래서 아예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한 표현으로 쓰이기도 한다.
물론 경우에 따라, 직무 적합성 자체가 부족해서 ‘핏’이라고 정리하는 경우라면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 즉, 직무적으로도 충분히 부합하는 지원자에게조차 그저 ‘핏이 다르다’ 고 말하고 끝낸다면, 그건 면피이자 무례한 대응이다.
‘핏’이라는 말은, 그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니다.
다만, 그걸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방패처럼 쓰는 순간, 그 조직의 태도가 드러난다.
결국 핵심은 ‘다름’이 아니라, ‘말하지 않음’에 있다.
🧠 스타트업은 자율성과 소통을 이야기한다
많은 스타트업이 ‘빠른 실행’, ‘수평적 문화’, ‘자율적인 분위기’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지원자 한 명을 대하는 방식에서 부터
그 말이 얼마나 표면적이고 공허할 수 있는지가 드러나기도 한다.
- 자율 이라는 말 뒤에 책임 회피가 숨어 있고,
- 수평이라는 말 뒤에 일방적인 판단이 따라오며,
- 소통이라는 말 뒤엔 대답 없는 정적이 자리 잡고 있다.
‘핏’이라는 말도, ‘형평성’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그 단어들이 진심에서 비롯된 말인지,
아니면 설명하지 않기 위한 편리한 선택지인지는
그 조직이 지원자와 얼마나 진지하게 마주할 의지가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역할을 한다.
✅ 나는 이 회사를 내 선택지에서 지웠다.
정중한 말로 포장된 회피,
'핏' 이라는 이름으로 덮은 일방적 판단.
만일 그것이 그 조직의 일하는 방식이라면,
나는 그곳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이 회사에서 내 선택지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 마무리하며
회사는 사람을 평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원자도 회사를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응답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해놓고, 막상 돌아온 건 의미 없는 회피성 문장뿐이었다.
나는 이 지점을 가장 큰 문제로 삼고 싶다.
나는 단지 결과를 넘어서, 그 판단의 기준과 맥락이 궁금했을 뿐이다.
그것마저도 형식적으로 처리하는 조직이라면, 함께할 이유도, 기대할 가치도 없다.
나는 떨어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분명해진 건 —
이 조직은, 내가 찾는 조직이 아니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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